2014년 10월 1일 수요일

해릉양왕(海陵煬王)

해릉양왕(海陵煬王)


금(金)나라의 네번째 황제인데 죽은 뒤 폐서인되었다. 그래서 책에는 해릉왕이라고 나와 있거나
뒤에 받은 시호 양(煬) - 참고로 이건 아주 안 좋은 시호다. 황음무도하고 예법을 모르는 자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수양제(113만 대군을 끌고 고구려를 침공한 황제)의 양 자도 이 양 자다 - 
을 붙여 해릉양왕이라 칭한다. 이름은 완안적고내, 중국식으로는 완안양이라 불린다.

해릉왕이 번왕이었을 때 당시 금나라 황제 희종(해릉왕의 사촌 형이 된다)은 해릉왕의 착실한
성품을 높게 사서 그를 자주 불러 이야기를 같이 나눴으며, 금태조의 창업의 어려움을 희종이 말할 때
해릉왕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희종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국정에 임하였지만 재위 10년이 넘어가면서 차츰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며 무고한 대신을 함부로 죽이기도 하였다. 이런 그에게 실망한 신하들은 해릉왕과 함께 역모를
논의하게 되었다.

1149년 그들은 마침내 쿠데타를 일으켰다. 희종은 황급히 동생을 찾았지만 나타난건 손에 칼을 들고
들어온 해릉왕이었다. 역모가 성공하고 제위에 오른 해릉왕은 희종의 일족(자손이 많아 다 합치면 70여
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짐)을 모두 죽여 희종은 제사가 끊기게 되었다. 하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
후환을 끊기 위해 전임자의 혈족을 다 없애는 것은 비단 이 일만 아니고 동서양사에서 자주 보이니
해릉왕만이 잔혹하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해릉왕은 제위에 오르고 나서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은 고대의 현군을 본받고 싶고, 경들의 직언을 듣고 싶다. 조정이 잘못하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간언해 주길 바란다."
또한 병영을 순시하였는데 병사가 흙이 섞인 밥을 먹고 있자 자신이 그걸 빼앗아 먹고 더 좋은
밥을 주도록 하였다. 순행길에 마차가 넘어져 사람이 깔린 것을 보자 자신의 친위대에게 마차를
들어올려 사람을 구해 주도록 시켰다.

여기까지만 보면 성군이 될 자격이 충분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건 훼이크였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색마였고,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위아래를 가리지 않았다. 친척도 그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엄연히 남편이 있는 부인을 잡아다 범하는 일도 서슴없이 했다. 신하들이 이를
크게 걱정하고 간언하였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해릉왕은 거위 고기를 좋아했는데, 순행 나가서도 짐짓 산해진미를 물리치고 '짐에게는 거위 고기면
충분하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시도 때도 없이 거위고기를 찾는다는게 문제였다.
나중에는 거위 가격이 크게 올라 신하들이 황제에게 바칠 거위를 구하기 위해 소 한마리를 끌고 가서
거위 한 마리와 바꿔 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1153년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를 연경(현재의 베이징)으로 옮겼다. 이 때 반대한 신하들은
대부분 한 칼에 목이 달아났다. 그리고 해릉왕은 본인이 제위에 오를 때부터 밝혔던 남송 정복을 위해
50여만명의 장정을 강제 동원하고 배를 건조하도록 지시했다. 국고는 이미 파탄이 났고, 가족이
서로 떨어지거나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 이를 원망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진동시킬 정도였다.

당시 남송과는 화평조약이 맺어져 있었지만 남송은 이전에 북방 민족들에게 당한 쓰라린 역사가
있어 강남으로 후퇴한 뒤에도 항상 전선을 건조하고 성곽을 수리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금의 신하들도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여러 신하들이 남송 침공을 반대했지만 해릉왕은 그들을
모두 목 베는걸로 여론을 탄압했다(심지어 태후 - 황제의 어머니 - 마저도 전쟁을 하지 말라고 
간언하자 어머니까지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다).

남송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금의 선박 기술은 남송에 뒤떨어졌고 번번히 
수전에서 물 먹기 일쑤였다. 그러고도 남송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천막으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해릉왕은 깜짝 놀라 화살을 봤는데 그건 송나라 군사의
화살이 아니고 금나라 군사가 쓰는 화살이었다.
그렇게 부장이 일으킨 반란으로 1161년 비참한 죽음을 맞았고, 폐서인된 뒤 모래밭에 아무렇게나
매장되었다. 물론 그의 일족(태자 등)도 모두 주살당했다.

금나라 백성들에게는 다행히도 제위를 이은 완안오록은 소요순시대를 열었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의 명군이었다. 완안오록의 묘호는 바로 세종(世宗)이다.

금 말제(末帝) 완안호돈

금 말제(末帝) 완안호돈


말제'라는 칭호가 말해주듯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다. 소종(昭宗)이라는 묘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정식으로 추숭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서에서는 말제라고 칭한다. 대개 한 왕조의
마지막 황제라면 폭군이거나 멍청한 인물인 것이 보통인데 이 황제는 그럴 시간도 없었다.
제위에 오른 그 날 저녁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역사상 최단기간 제위에 있었던 군주로
기록되어 있다. 한자 표기로는 완안승린이라고 한다.

당시 금나라는 이미 막바지에 이른 상황이었다. 몽골이 무섭게 치고 내려오자 금나라에서는 그때서야
남송과 연합하여 몽골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남송은 몽골과 손을 잡고 금을 멸할 - 정강의 변 이후
남송에게 금은 원수와도 같았다 - 계획을 세우고 군대를 북쪽으로 보낸 상태였다. 선제 애종 완안영갑속은
몽골군의 공격을 피해 임시 수도로 삼은 채주에 피난와 있었는데 몽골군이 이미 채주까지 이른 상태였다.
애종은 몸이 비대하여 더 이상 뛸 수 없었는데다 그 동안의 고생에 지쳤는지 1234년 2월 9일 아침에
자신의 호위대장이었던 완안호돈에게 양위하고  - 그는 제위를 받지 않으려 하였으나 애종이 그대가
제위를 받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듣고 제위에 올랐다 -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다.

말제 완안호돈은 일단 채주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사태 수습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처 성을 빠져
나가지도 못하고 제위에 오른 그 날 저녁 효수되어 정대 끝에 머리가 걸리고 말았다. 그의 머리는
남송으로 보내졌고, 당시 남송 황제 이종은 그 머리를 태묘에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
금나라는 그렇게 해서 120년만에 멸망했다. 하지만 이이제이라고 몽골을 이용해 금을 제압한 남송도
그 끝이 좋지는 못했다. 몽골군이 잠시 후퇴한 사이에 군대를 보내 옛 수도인 개봉과 낙양을 일시
되찾았지만 곧 돌아온 몽골군에게 깨끗하게 털리고 다시 강남으로 내려와야 했으며 끝내는 몽골에게
남송도 망하고 말았다.

유세포 분석기를 이용한 세포 주기 분석

유세포 분석기 (flow cytometer) 는 세포의 물리적 특성에 따라 세포들을 분류 분석하는 장비다.
유세포 분석기를 이용하여 세포 주기 분석을 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프로토콜을 올리는것이 아닌 기본적인 정보와 원리를 설명하려 한다.


 소개

세포 주기

정상적인 세포는 G1, S, G2, M 기 를 지나 세포 성장과 분열을 이뤄낸다.
G1 은 일반적인 세포의 성장이고 S 는 DNA 복제가 이뤄지는 구간이다.
복제 이후 G2 기에서 몇가지 준비와 성장이 이뤄지고 M 기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성장기, DNA 복제기, 분열 준비기, 그리고 분열기가 세포의 주기를 이루는 것이다.

영문으로 나타난 세포 주기 
그림 출처: bdbiosciences.com; 원본

세포 주기 분석에서 유의할점은 각 구간마다 세포의 DNA 양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이다. 
G1 에서는 DNA 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기에 가장 적은 양의 DNA 가 발견된다.
그에 반에 G2 와 M 기에서는 이미 DNA 복제가 끝난 상태기 때문에 가장 많은 양의 DNA가 발견되고 이는 G1 에서 발견된 양의 두배다. 
그렇다면 S기 에선 얼만큼의 DNA 가 있는 것일까? G1기에서 발견된 DNA 양이 1n 이고 G2기에서 발견된 DNA 양이 2n 이라면 S기에선 1n 과 2n 사이의 DNA 양이 발견된다. S기의 진행 상태에 따라 1.2n 일수도 있고 1.8n 일수도 있는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것은 G0 기 이다. 정상적인 세포의 경우 거이 G0 를 거치지 않고 바로 M 기에서 다음 G1 기로 넘어간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세포가 정상적인 성장과 분열을 할수 없다 판단 될때, 예를 들어 충분한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았다면, 세포는 G0 기 에서 성장을 멈추고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린다. G0 기에서도 G1 과 같이 1n 의 DNA 를 가지고 있다.

마이크로 피펫의 올바른 사용법

올바른 마이크로 피펫의 사용법을 다시 검토하고 모르고 있었을수 있는 피펫 요령을 소개한다.
이미 마이크로 피펫 사용법은 잘 알고 있다면 마지막에 소개된 정확한 피펫을 위한 팁 만 확인해도 될것이다. 


소개

마이크로 피펫 (micro pipette) 은 소량의 액체를 재고 옮기는데 유용하다.
여러 모델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숫자 계량기와 조정기기를 가추고 있다.
계량기는 마이크로 피펫이 현재 옮길수 있는 액체의 양을 마이크로 리터 (µL) 단위로 나타내고 이는 손잡이 부분의 조정기기를 통해 조절 가능하다. 조정기기는 대부분 피펫 가장 윗부분의 푸시 버튼을 돌리는 형태이다. 마이크로 피펫의 종류에 따라 옮길수 있는 액체량의 범위와 조종가능한 최소 증가량이 다르기에 필요에 따라 적절한 피펫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마이크로 피펫은 종류에 따라 다른 피펫팁을 장착해 사용해야 하기에 이또한 유의해야 한다.

마이크로 피펫 자체의 오차 범위는 굉장히 낮다. 조율이 된 피펫의 오차 범위는 0-3% 정도인데 굉장히 적은 양을 옮긴다는것을 감안할때 거이 오차가 없다 볼수 있고 몇프로의 오차는 일부 사용자로 부터 오는 오차이다. 올바른 마이크로 피펫의 사용은 오차를 최소화 한다.

팁이 장착된 마이크로 피펫
그림 출처: servilab.fr; 원본



기본 사용법

1. 적절한 마이크로 피펫에 피펫팁을 장착한다. 
피펫 팁은 살균된 상태기에 손으로 만져선 안된다.
피펫을 그대로 눌러서 장착하고 사용을 안할땐 피펫팁 용기를 항상 닫어둬야 한다.

2. 조정기기를 돌려 피펫의 양을 설정한다.  
피펫이 사용 가능한 범위 밖으로 나갈경우 피펫 안에 있는 스피링이 망가질수 있다.

3. 엄지 손가락으로 푸시 버튼을 눌러 첫번째 스탑을 느낀다.
어느정도 누르면 버튼이 뭐에 걸려 더 안내려감을 느낄수 있다.

4. 피펫을 할 액체 안에 피펫팁을 넣고 엄지 손가락을 땐다.
액체가 빨려 들어가는것을 볼수 있다.

5. 액체를 옮길 용기에 피펫을 향하고 다시 푸시 버튼을 눌러 액체를 빼낸다.
마찬가지로 어느정도 누르면 버튼이 걸린다.

6. 푸시 버튼을 끝까지 눌러 두번째 스탑까지 간다.
힘을 조금 더 주면 더 눌러진다. 
두번째 스탑까지 감으로 피펫팁에 남아 있을수 있는 액체를 모두 빼낸다.



올바른 피펫을 위한 주의 사항

1. 피펫을 할때는 항상 피펫을 수직으로 세운다.
피펫이 기울면 정확한 양의 액체가 들어가지 않는다.

2. 극소량의 액체를 옮길때는 피펫팁과 액체의 접촉면이 최소화 될수 있도록 유의한다.
극소량의 경우 피펫팁에 묻는 액체의 양도 무시될수 없기 때문이다. 끝만 살짝 들어가게 하고 피펫을 하되 공기가 들어가진 않게 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용기 벽과 접촉은 가능한 피하고 절대 용기 벽에 샘플을 배출해선 안된다. 용기 바닥까지 피펫팁을 집어넣고 바닥에 배출해야 한다.

3. 극소량의 액체를 옮길때는 액체 안에서 두번째 스탑을 누르지 말아야 한다.
액체를 빼내는 과정에서 두번째 스탑을 누를경우 피펫에서 공기가 나온다. 극소량의 샘플을 옮겼는데 그 안에서 공기를 배출하면 공기 방울이 생성되어 일부 샘플이 손실될수 있다.

4. 피펫은 항상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해야 한다. 
액체의 점성에 따라 피펫에 들어가고 나가는 속도에 차이가 있을수 있다. 
같은 양의 액체의 경우 같은 속도로 푸시버튼을 누르고 때어내어 오차를 줄여야 한다. 
특히 너무 빨리 액체를 빨아 들일경우 필요 양보다 적은 액체가 들어올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5. 액체를 빨아 들인후 잠깐 기다린후 피펫팁을 꺼낸다.
점성에 따라 피펫에 들어가는 속도가 늦을수 있다. 액체가 다 들어가기 전에 팁을 들어 버리면 액체 대신 공기가 들어가고 팁 끝이 비게 된다. 너무 오래 기다릴경우 또 이미 피펫 안에 있는 액체가 기화할수 있기에 일정 시간을 기다리는게 중요하다.

한자의 記號와 意味

한자의 記號와 意味


한자의 記號와 意味
한자는 기호와 의미를 지닌 뜻의 문자이다.
한자는 글자이면서 언어라는 것이다.
언어는 언어학에서 보면 소쉬르가 말한 시니피에(의미)와 시니피앙(기호)의 양면을 지니고 있다.
한자를 공부 할 때 소리와 뜻, 즉 訓과 音을 공부하면서도 훈과 음을 같은 표현의 방법으로 여겨 훈음을 나타내는 글자라는 의식이 매우 깊다. 音은 한자의 소리요. 훈은 한자의 의미, 즉 메시지가 담겨 있는 언어이다. 이렇게 나누어 생각하지 않고 글자라는 생각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기고 있다. 이에 한자는 왜 글자가 그렇게 많은가?
왜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는가? 왜 그렇게 복잡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됨이그러하다.
한자는 단음절어이기 때문에 같은 하나의 한자가 말이다.
첫째의 질문에 답하자면 한자는 말이기 때문에 많다.
한글과 영어의 단어(언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도 한자는 대충 6만여 자라고 한다.
두 번째 답은 이렇다. 소리글자 영어나 한글 등은 글자가 여러개 합하여 의미적으로 공감이 되어야 언어로써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자도 하나의 자 속에 의미를 넣고자 다른 자와 조합하면서 복잡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답은 이렇다. 언어란 시대에 필요하면 자연 발생하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으면 사멸하는 것이 언어의 특징이다.
한자를 글자라고만 보지 말고 언어라는 측면에서 보아야 이해하는데 용이하다.
언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자는 모두 연계성을 가지고 만들어 졌다. 이 연계성을 이해하는 것이 文理를 얻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 라캉의 상상계와 상징계와 실재계의 한자와 관계를 설명하겠다.
앞에서 이어 라캉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3가지라고 하여 이전의 쇼스르의 2개라는 의미에도전하였다. 想像界(the imagery) 象徵界(the symbolic) 實在界(the real)이다.
한자의 뜻에는 상징계와 실재계가 있다고 본다.
한자공부시에 訓音에서 訓은 상징계에 속한다.
視 見 觀 望 省 察 覽 등을 ‘본다’라고 한다. 여기서 이러한 여러개의 뜻을 ‘본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다.
또 한자의 3요소 形, 音, 意에서 意는 실재계에 속한다.
상징적 표현인 세상의 ‘아버지’ 각각 다르듯이 앞의 ‘본다’라는 자는 언어적 의미로는 각각 다른 것이다. 이것 또한 한자를 글자로 보는 견해에서 생기는 의문인 같은 글자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서 답을 하고 가고자 한다. 앞에서 말한 상징계로는 같으나 실재계에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이 언어의 장점이고 언어의 효율성이다. 모든 언어적 표현을 구분하다보면 그 숫자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글에 ‘죽다’라는 말은 그 함축된 표현이 너무 많다. 이처럼 한자도 언어이기 때문에 類意적 표현이 많은 것이다.
다시 실재계에서의 유의자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것이다.
실재계란 자를 만들 때 구조에 들어간 자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意音이라 하지 않고 訓音이라 하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意란 글자마다 유심적 의미변화가 많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어 여기에 관계되는 望形生訓과 以形索意을 설명하겠다.
 
앞에서 어어 望形生訓과 以形索意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望이란 한자는 특별한 행위가 없이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의미이다.
古典에서는 以形索意라고 意를 義로 하고 있는 것은 당시에 意자가 만들어 지기 전에는 義자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두 자가 병존하는 이유는 고전에 그렇게 사용한 자료를 그대로 불러다 쓰기 때문이다.
한자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래서 성부의 한자는 합자의 뜻을 갖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소리가 같으며 뜻이 가깝다고 하는 同音近意이다.
望形生訓에서 ‘본다’는 한자 중에 望은 가장 막연하게 본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望形은 한자의 ‘모형을 보고’라는 의미이며 訓은 訓音에서 말했듯, 訓이란 상징적 의미이다. 生訓은 암기한 한자의 훈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한자를 보면 그 구조를 살펴 그 뜻을 유추하여 내는 것이 아니라
한자만 보면 그 훈을 바로 생각한다는 말이 된다. 이는 암기식 교육의 산물이며 기억력을 담당하는 좌 두뇌의 발달이다. 이러한 훈련은 한자는 한문공부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한자는 한자만의 학문적 체계와 세상이 있다고 하는 견해를 이해하지 못함에서 온 것으로 본다.
우리는 과거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물로 여겨 왔다. 그래서 어른을 본받고 어른의 시키는 대로, 어른의 비위에 맞으면 바람직한 어린이로 여겨왔던 의식과 비슷하다.
현대의 어린이관은 다르다. 어린이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자도 그러하다. 한자에 하나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한자에는 인간이 행동하여야 할 방법이 내재되어 있고, 한자의 구조가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는 한문을 공부하기 위한 알고리즘만이 아니다. 이것이 한자를 공부하면 이에 세상의 이치가 들어 있어 행동거지가 바람직해 진다는 결론이다. 이 때문에 한자(文字)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는 의미가 세워진다.
以形 索意에서 以形은 ‘ 한자의 모형에서’ 라는 것이며 索意은 ‘의미를 찾아낸다’이다.
意는 라캉의 실재계이다. 실재계는 내면에 남아있는 의미로 한자의 구조의 차이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한자의 구조를 살펴서 그 뜻을 찾아낸다는 말이다.
이러한 행동은 한자를 보고 구조에 따라 그 뜻이 이루어짐을 설명 한다는 것으로 입으로 쓰는 한자공부라고도 한다. 한자를 보고 正誤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손가락으로 써보는 행동은 훈음 외우고 쓰기를 수많이 해서 공부 했다는 의미이다. 한자의 구조를 들여다 보고 무슨 자에 무슨 자를 하여야 하는데 잘못이라는 판단 기준이 되어야 이것이 바로 한자가 가지는 의미 학습인 것이다. 이것이 창의력과 상상력과 논리력을 기르는 미래 지향적 학습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 두뇌를 발달시키는 활동이다. 이것이 한자교육이 조기교육의 필요성이기도 하다. 이어서 한자의 실재계는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겠다.
 
視 見 觀 望 省 察 覽 看의 ‘본다’에서 見은 사람의 눈을 그린 상형자이다.
분해한다면 目(눈목)+(어진사람인=人)으로 되어 사람의 눈의 기능을 표현함이다.
‘본다’의 일반 총칭이다. 단 여기서 본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라고 하였으며 그 행동을 바르게 라고 하여 그 시사하는 바가 있다.
視은 見+示의 구조이다. 부수가 見으로 자의 의미의 대표가 되는 것이며 示는 한자의 소리인 聲符가 되고 부수(形符)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여 보는 것(見볼견)을 보이(示)는 대로 보라는 의미 있다. 따지고 조사하는 것은 아니다. 어휘는 巡視이다.
觀은 見(볼견)+雚(황새관)으로 見을 부수로 하고 소리인 雚은 보는 것(見)을 어떻게 하라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황새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듯 매우 조심성 있게 자세히 그리고 오래도록 살핀다는 의미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살핌으로 다음의 察과 비교된다. 어휘는 觀光이다.
察은 宀(집면)+齊(제사 제)로 宀(집면)을 부수로 하여 두 한자가 합하여 다른 뜻을 만든 회의 문자이다. 즉 제사지내려면 집안을 잘 살피라는 것이다. 여기서 살피는 것은 觀과 달리 잘 보이지 않는 裡面(속)을 의미한다. 즉 부정인 것이 없는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휘는 診察이 어울린다.
이렇듯 모든 유의자는 실재적 의미로는 같지 않다는 것이며 訓이 같다고 하여 다른 한자와 서로 교환하여 사용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